미래서정(Future lyricism)

-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뇌와 컴퓨터가 연결된다면,
인간은 컴퓨터에 자신의 모든 내용을 백업해두고
이 컴퓨터에서 저 컴퓨터로 옮겨 다니는
그런 존재가 될 것이다.

-에릭 뉴트(Eirik Newth), 미래 속으로(2001)-

에릭 뉴트가 『미래 속으로, 2001』라는 저술에서 '로봇이 미래의 인류가 될 수 있다'고 한 주장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기계가 아직은 인간과 똑같이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지만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우리가 앞으로 20년 안에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처리능력을 지닌 놀라운 기계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에릭 뉴트의 주장처럼 로봇이 미래의 인류가 된다면, 그 미래의 세계는 어떤 모습을 지닐까? 그러한 미래의 세계는 김학제(Hak-J Kim)의 <미래서정-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타이틀의 전시에서 마주하게 될 조각, 회화, 사진, 영상을 통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성찰과 사고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미래서정-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전시는 로보틱 아트, 또는 사이보그 아트와 관련된 소재를 지니고 있지만, ‘로봇의 기계적인 작동과 인간의 신경망과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는 전시이거나, 또는 첨단기술과 소재로 진화되어 가는 미래의 로봇 형상을 상상하고자함이 아니라 인류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발전되고 있는 ‘로봇’이라는 기계에 대한 감정적 의미를 서정적으로 표현하고자했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인류의 진화와 일맥상통한 현상들을 담아내면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의존하는 인류의 미래를 풍자한다. 인간 욕망의 상징물로서 로봇을 대자연의 풍만한 에너지와 믹스하면서 다가올 미래의 패러다임에 대해 성찰해보는 데에 주된 의미가 있다.

'미래서정'의 의미

김학제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미래서정의 탄생은 2003년 김학제 작가가 미국에 체류할 당시 미국 서부의 광활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을 느끼며, 인간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나라는 존재는 시간의 과정과 흔적들의 일부이다.’라는 소주제를 확장하여 미래서정의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그것은 자연의 순환에 관여하는 시간성 안에 놓여진 '나'를 어느 미래의 ‘나’라는 존재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작품의 구상이 시작된다.
그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본 인간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작가의 서정적 감성으로 풀어내기 위한 주제로써의 역할을 ‘미래서정’이라는 단어에 담아 놓았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의 실체는 자연의 실체인가? 자연의 실체는 나인가?’라는 의문을 미래의 시공간에 존재하게 될 로봇들의 질문으로 대체하면서 ‘로봇의 실체는 자연의 실체인가? 자연의 실체는 기계인가?’라는 물음표에 대한 답을 작가는 가상으로 구현한다.
즉 진화된 로봇이 감성적이라는 가정 하에 미래의 시간에서 과거의 시간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자연을 바라본 감성들을 예측하여 미리 보여주는 작품을 통해 ‘로봇의 감성이 인간에게 던져줄 의미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사고들을 ‘미래서정’이라는 단어에 함축하고 있다.

미래서정의 의미는 김학제 작가에게 인간을 포함한 거대한 자연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압축해 있는 시간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광활한 자연의 경관은 자연의 모든 생명들이 선형적으로 진화한 결과이며 생명의 순환 장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광활한 자연의 경관은 작가에게 있어 미래 인류의 로봇과 그러한 로봇을 탄생시키게 만드는 현재 인류의 패러다임을 거울과 같이 반영하게 하는 생명 순환의 상징이며, 작가의 감성의 원천이다.

몽키로봇과 거북이의 상징

<미래서정-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몽키로봇’과 ‘거북이’다. <미래서정-길 잃은 미래, 2014>의 작품에서 보여 주는 몽키로봇과 거북이의 상징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간을 통합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몽키로봇은 디지털 기계의 발전으로 인위적으로 진화를 하는 인류을 상징한다. 유인원시절의 인류를 상기시키는 얼굴형태와 비만한 현대인 그리고 미래의 기계인을 믹스해놓은 몽키로봇,이에 반해 거북이는 몽키로봇과 대조를 이루는 아이콘이며 이 전시의 또다른 작품인 디지털 프린트에서 보이듯이 광활한 자연의 경관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발전시킨 형상물이다. 지팡이를 더듬으며 거북이의 뒤를 따라가는 장님 몽키로봇은 인류의 진화와 대자연의 동시성을 대비시키고 있다.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알을 낳는 거북이에게 앞이 안보이는 몽키로봇은 지팡이를 짚고 길을 맡긴다. 조류와 같이 거북이는 머리 안에 있는 자철석 광물질로 지구 자성에 반응하여 먼길을 여행하고 매번 같은 장소로 알을 낳으러 찾아온다. 자철석은 자성을 띤 광물로 나침반 바늘의 재료로서 현대 자연과학적 지식에 의하면 거북이는 자기장으로 방향만 아는 게 아니고, 자기가 바다 어디 부근에 위치해 있는지도 안다고 기술하고 있다.
거북이가 광활한 자연과 우주의 순리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기능을 하고 지구와 일체화가 되어 생명의 순환을 통해 자연적인 진화를 하는 반면에 몽키로봇은 <미래서정-부끄러운 흔적, 2014>에서 보이듯이 자연으로부터 진화를 해왔다는 증거조차 부끄러워 인간의 퇴화된 꼬리뼈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모습에서 보듯이 자연과의 일체화보다는 자연의 모든 것들과 분리 또는 지배하고자 우매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익살스러움과 위트

<미래서정-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작품들은 패러디와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인 장면을 띠고 있어 외형이나 구성형식에 몰입하게 하기 보다는 한발 물러나서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는 관조적 요소를 지니고 있고 메시지의 측면에서 쓸쓸함과 슬픔을 자아내는 서정성을 관람자에게 작동시키고 있다.

패러디적인 요소를 띠고 있는 작업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1475>의 작품을 유인원,인간과 로봇의 형상으로 대체하여 패러디한 <미래서정-천지창조, 2014>의 작품이다. 작가는 미래 인류가 잉태한 로봇들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의도로 패러디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패러디가 지닌 희극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풍자적인 요소는 <미래서정-생명의 중량 2014>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몽키로봇은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고 그 중량의 무게에 인류의 상징인 갓난아이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갓난아이와 몽키로봇의 아이콘은 거북이와 장님 로봇 아이콘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머러스한 장면은 <미래서정-부끄러운 흔적, 2014>의 작업에서 몽키로봇이 자신의 꼬리를 자르는 모습이나, 또는 몽키로봇이 세상을 내다볼 수 없는 장님의 포즈로 거북이를 쫓아가는 장면이나, 또는 <미래서정-백일몽, 2014>의 작업에서 엎드려 있는 소녀의 형상을 통해 로봇을 갈망하며 꿈꾸는 장면들이다.

<미래서정 -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김학제의 작품전은 인간의 욕망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도래하게 될 미래의 사이보그,로봇을 포함한 인공지능 시대를 내다보며 사색의 장을 펼치는 전시이다. 작가는 표현에 있어 첨단적인 기술과 매체를 사용하여 인간의 생체적인 기능들이 사이보그,로봇,인공지능으로 얼마나 가공스럽게 발전해 가고있는가를 보여주고자하는 것도,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는 S.F적인 로봇들의 디자인적인 형상들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도 품고 있지 않다.작가의 의도는 인간의 욕망과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일어날지도 모를 미래의 풍경을 몽키로봇이라는 조각의 형식과 회화,디지털프린트,영상작업등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인류를 성찰해 보고자함에 있다.


조관용(미술평론.미학박사) 2015